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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역사속 화성경찰서 - 화성동부경찰서→오산경찰서로 명칭 바뀐다
  • 기사등록 2012-11-18 19: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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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조윤장 편집국장 = 화성동부경찰서가 ‘오산경찰서’로 명칭이 바뀐단다.

 

인근 화성시동탄2신도시가 건설되면 이 곳을 관할하는 ‘화성동탄경찰서’가 신설되면서 기존 화성동부경찰서 명칭이 ‘오산경찰서’로 변경된다는 것이다.

 

경기지방경찰청과 민주통합당 안민석 국회의원 등에 따르면 정부의 경찰서 신설 5개년 계획에 의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연차적으로 고양 서부·남양주 북부·화성동탄 등 3개 경찰서가 각각 신설될 예정이다.

 

앞서 10월 화성동탄경찰서 등 3개 경찰서 신설안이 국회로 넘겨진데 이어 11월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여· 야 합의로 통과되면서 기정사실화 됐다.

 

경찰서 신설안은 아직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통과 등 절차가 남아있지만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되면 최초에 건립된 화성경찰서가 화성동부경찰서에 이어 오산경찰서로 옷을 세 번 갈아입는 것이다.

 

오산 한복판에 있으면서 수 십 년 동안 ‘화성’을 머리글자로 붙여진 경찰서 명칭 탓에 오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피해의식(?)에 노출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심지어 혹자들은 화성경찰서가 오산에 위치하지 않고 당연히 화성에 소재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였으니 무리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화성경찰서는 여느 경찰서에 비해 좀 특별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아니 기억하기 조차 하기 싫은 슬프고 참담한 기록으로 역사하고 있다.

 

2003년 봉준호 감독 작품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만들어진 전대미문의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

 

희대의 미제사건 그 중심에 화성경찰서가 있었다.

 

1978년 수원경찰서에서 분리· 독립된 화성경찰서는 당시 화성군 17개 읍· 면을 치안지역으로 담당하며 출범했다.

 

이어 1989년1월 정부의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화성군 오산읍이 시(市)로 승격되면서 오산시와 화성군 등 2개 지자체를 관할한다.

 

그러면서 2006년12월13일부터 2007년1월3일까지 불과 20일 사이에 각각 군포·수원에 사는 30~50대 여성 3명이 화성시 비봉면 3개 마을에서 휴대전화 전원이 끊겼다.

 

또 연이어 20대 여대생 마저 비슷한 무렵 수원에서 소식이 두절되는 일명 부녀자연쇄실종사건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화성부녀자사건이 뇌리에서 잊혀져 가는 시점에서 이 사건은 국민들을 또다시 불안과 공포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했다.

 

당시 대통령 선거가 맞물렸고 선거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급기야 화성지역에 경찰서 신설을 지시했다.

 

이에 임시로 가건물에서 업무를 시작한 ‘화성서부경찰서’가 화성시 신남동에 둥지를 틀고 2008년4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화성서부경찰서 개서에 따라 오산시 원동 350에 위치한 화성경찰서는 ‘화성동부경찰서’로 명칭을 바꿔 오산시 전역과 화성시 일부를 치안구역으로 업무분장했다.

 

화성동부경찰서는 2010년 지금의 오산시 동부대로 596(부산동 398-3)으로 신축· 이전했다.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은 1986년~1991년까지 화성시 태안읍 등 일대에서 10대~70대 여성 10여 명이 성폭력 등으로 살해된 사건이다.

 

 발 생 일 시

 피 해 자

 나 이

발 생 장 소

 1986.9.15

   L

  71

태안읍 안녕리

 1986.10.20

   P

  25

태안읍 진안리

 1986.12.12

   G

  24

정남면 관항리

 1987.1.10

   H

  18

태안읍 황계리

 1987.5.5

   P

  30

태안읍 진안리

 1988.9.7

   A

  54

팔탄면 가재리

 1988.9.16

   P

  13

태안읍 진안리

 1990.11.15

   K

  14

태안읍 병점리

 1991.4.3

   G

  69

동탄면 반송리

 

8차 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들이 미제로 남았고, 마지막 사건(1991년4월3일) 15년 뒤 2006년 4월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미제로 기록되고 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최초의 부녀자연쇄살인사건으로 경찰 180만 명이 수사에 동원됐고, 무려 3천명이 용의자 선상에서 조사를 받았다.

 

개구리소년사건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미제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화성경찰서와 관련한 흥미로운 얘기도 있다.

 

7년 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풍수지리가 P씨는 “1978년 개서한 화성경찰서가 당시 서장 25명이 바뀌는 동안 4명 가운데 1명 꼴로 각종 불미스런 사유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하차하는 등 문제가 유발된 배경은, 건물 좌향(坐向)이 풍수지리적으로 잘못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한 때 관심을 모으기도 했었다.

 

부녀자연쇄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때 마다 지휘책임을 물어 서장과 수사책임 간부가 경질됐고, 보신탕을 멀리하고 역술인에게 점을 보는 등 웃지 못할 진풍경도 생겼었다.

 

그 만큼 화성경찰서는 화성부녀자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중심에 있었다.

 

이젠 명칭 마저 사라진 과거로 기억되지만, 지금의 화성동부경찰서와 향후 바뀌게 될 오산경찰서를 잉태하게 만든 화성경찰서는 무수한 사연과 역사를 남겨 놓고 있다.

 

5년 뒤 오산경찰서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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