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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오작교 '사설우체국' - 이영주 기자, 오산 신장동 '우편취급국' 방문기
  • 기사등록 2012-12-18 13: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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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요즘 보기 드문 우체통이 신장동 우편취급국 앞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1908~1967)의 시 ‘행복’중 일부다.

 

시(詩)는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서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이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정다운 사연을 채색하고 있다.

 

▲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들'을 가지고 우체국을 찾는다. 오후 6시가 다 돼가는 늦은 시간 신장동 우편 취급국에서 고객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이 된 우체국은 아직도 기성세대에게는 향수 어린 장소로 추억된다.

 

▲ 목적지를 기다리는 소포들.

 

현대 문명의 이기로 이러한 정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할지라도 우체국은 여전히 ‘그리운 이에게 슬프고 정다운 사연’을 보내는 곳이다.

 

오산에 우체국은 총 5곳이다.

 

이 가운데 민간우체국은 신장점과 수청점 2곳이다.

 

▲ 우편물은 단단히 봉인돼 이동된다.

 

특히 신장점 터줏대감 김성영 국장(71)은 인생의 절반을 우체국에서 보냈다.

 

그는 75세 정년까지 앞으로 4년을 남겨두고 있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66년부터 당시 화성 동탄우체국을 시작으로 우체국과 반평생을 동고동락했다.

 

▲ 하루 2번 이동했던 이송차량은 경기 절감으로 하루 1번 오후 5시에 우편물을 가져간다.

 

고향 오산에서 나고 자라 군대생활 30개월을 제외하면 거의 오산에서 숨을 쉬며 살아 온 셈이다.

 

신장동 우편취급국은 1999년 오산우체국을 정년퇴직하고 민간위탁받아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 우편물을 운반하는 이 창 씨. 12월 중순 제법 추운 날씨지만 그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김 국장의 처음 우체국 생활은 집배원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오산에 하나 둘씩 공장이 생기는 등 산업화가 시작된 무렵이 1960년대 후반이니까, 그가 집배원 일을 할 당시만 해도 후덕한 시골인심이 묻어나던 때였다.

 

편지를 배달하다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새참을 얻어 먹기도 하고, 이웃에 사람이 없으면 옆집 편지를 대신 받아 주기도 했었다.

 

▲ 김성영 국장이 마음으로 적은 팻말.

 

그런 정겨운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산업·도시화로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깨진 물건 변상하라는 요구가 더 많지만, 김 국장은 항상  ‘고객의 편지는 안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있다.

 

신장동 우편취급국은 하루에 60~70개의 소포를 받는다.

 

 “이것도 요일을 타서 월요일~수요일까지는 우편물이 많고 목요일에 조금 저조하다가 금요일에 다시 늘어 난다”고 김 국장은 설명한다.

 

▲ 크기별로 쌓인 우편물 상자들. 미처 포장을 못했다면

 취급국에 비치된 상자와 에어캡(일명 '뾱뾱이')으로

즉석에서 포장할 수 있다.

 

등기는 1일 400건 정도 소화한다.

 

한 달 평균 6천여 건의 우편물을 취급하고 있다.

 

실로 엄청난 양이지만 김 국장과 그의 든든한 파트너(김 국장의 자제분) 두  명이 거뜬히 처리해 내고 있다.

 

VIP, 매우 중요한 손님에게  ‘특별 대우’는 백화점만 있는 게 아니다.

 

신장동 우편취급국도 단골 고객들에게는 ‘특급 대우’로 서비스 한다.

 

매일 아침 10개씩 배달되는 요구르트를 맛 볼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아무에게나 주는 건 아니다.

 

▲ 김성영 국장(오른쪽)과 자제분.(극구 촬영을 고사하는 통에 옆모습만 간신히 담았다)

 

요구르트 1개를 내밀며  “오늘은 많이 춥지요? 옷은 따뜻하게 입고 오셨어요?”라며 정겹게 묻는 김 국장이다.

 

이런게 나름의 고객관리(?)라고..

 

신장동 우편취급국은 또 얼마 전 오산시 5개 우체국 평가에서 100점 만점으로 1위에 올랐단다.

 

▲ 집무 모습. 능숙한 업무 처리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다.

 

김 국장은  “맨날 85점을 맞아 꼴등했다가 1등으로 올랐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 평가는 경인지방우정청이 우편물을 발송하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골라 전화를 걸어 설문조사로 이뤄진다.

 

친절도를 점검하며 사무실 청결상태, 직원의 복장 등을 두루 묻는다고 한다.

 

이는 고객들의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가능성이 적지 않아 어지간히 열심히 해서는 좋은 점수를 얻기 힘들 성싶다.

 

신장동 우편취급국 김 국장은 매일 관공서, 은행, 대학, 기업 등을 돌며 방문·접수를 한다.

 

▲ 김성영 신장동 우편취급소 국장.

 

우체국에서 43년을 일한 그이기에 내용물 확인은 필수다.

 

깨지거나 훼손되는 물건이 발생할 경우 변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꼼꼼히 접수·관리하기 때문에 어느 곳은 포장 바깥에  ‘화장품-튼튼하게 포장했음’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을 정도란다.

 

신장동 우편취급국은 오산우체국(총괄국)에 포함된 관내국으로 6급 관서로 분류된다.

 

▲ 운반차량이 대기하는 장소에 우편물을 옮긴 김 국장이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신장동 우편취급국은 총괄국에 비해 크거나 넓진 않지만, 이 곳에 가면 따뜻한 마음으로 반겨주는 김성영 국장이 있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몇 번을 더 찾아 가면 요구르트가 손에 쥐어진다.

 

여기에 그 때 그 시절 정겨운 우체국 풍경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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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붉은노을2012-12-26 13:25:43

    신장동취급국이 친절하다는 것은 오산직원들이 다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오산시민들께서도 인정해 주었군요.
    신장취급국 홧 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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