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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주말여행> 하늘과 땅, 산과 강과 바람, 바위와 소나무, 산새와 들꽃이 조화를 이루는 전국민 휴식처로 만든 괴산군 ‘산막이 옛길’을 통해 임꺽정이 다시 부활했다.

 

 

행복가족김천산악회(회장 박판수)는 6월 산행지로 선택한 괴산 임꺽정이 다니든 ‘산막이 옛길’에 동행을 했다. 산막이 옛길은 백두대간에서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져, 남한강의 달천(충주시를 관통)과 금강(중부관통)의 보강천이 흐르는 한반도의 정중앙 괴산군이 임꺽정이 다닌 길에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국민의 휴식공간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괴산군은 생각보다 매우 첩첩산골 골짜기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친환경 농업이 유명하다. 옥수수, 고추가 특히 유명하다. '산막이 옛길'은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하나로 어우러진 정감어린 옛길을 새롭게 복원하여 만든 길이다.

 

 

아마 ‘산막이 옛길’은 1957년 우리나라 기술로 최초로 건설된 수력발전용 괴산댐의 역사성을 알리고, 자연생태계 보고임을 알리면서 지역의 개발을 위해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으로 하늘과 땅, 산과 강과 바람, 바위와 소나무, 산새와 들꽃과 바위가 조화를 이루는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대박을 치고 있다.

 

 

에디터는 개인적으로 괴산이라고 하면 임꺽정을 생각한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생가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홍명희는 일반 다른 작가와는 아주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임꺽정도 사실은 그 당시 부패한 사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임꺽정을 통해 알렸다.

 

 

그런 기질의 홍명희 작가는 다른 작가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다른 문인의 경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의 편에서 각종 찬양하는 시와 글을 쓰고 했으나 홍명희 작가는 괴산에서 혼자도 아닌 동생들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했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그는 1년 동안 고통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지금도 그것을 기념하는 비가 괴산군에 있다. 벽초 홍명희는 1888년 충북 괴산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홍범식과 어머니 윤씨 사이에서 4남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홍범식은 경술국치 때 가장 먼저 자결한 인물로 어떻게 보면 홍명희 작가보다 더 애국자이다.

 

 

 

홍명희는 어린 시절부터 비상한 기억력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일찍부터 문학적 재능을 드러낸바, 이광수, 최남선 등과 아울러 ‘조선 3대 천재’로 불렸다고 한다. 당시 금산 군수였던 아버지가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든지 조선 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해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했다.

 

 

해방 후 벽초는 정치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작가보다는 사회운동가 또는 정치가로 활동했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한 후 그대로 북에 남았고, 남한 출신으로서는 드물게 북한 초대 내각의 부수상까지 지냈다. 알려지기는 한국전쟁을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현재 평양 애국열사릉에 부인 민영순과 함께 안장되어 있다.

 

 

벽초의 아들 홍기문도 아버지를 따라 월북한 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국어학사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국어학자다. 벽초의 큰손자 홍석형도 현재 북한의 고위직으로 알려져 있고, 작은 손자가 벽초의 대를 이어 작가가 된, 소설 ‘황진이’로 유명한 홍석중 선생이다. 북쪽 작가 최초로 남쪽에서 제정한 만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6년 민족작가대회 때 북에서 만난 홍석중 선생은 키도 크고 그의 소설처럼 매우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홍명희 작가는 ‘임꺽정’이라는 단 한 편의 소설로 민족문학사의 큰 획을 그었다. 문제는 북한에서 정치적 활동의 전적이 있어 남한에서는 역사소설 ‘임꺽정’은 몇 차례의 중단을 겪으면서 <조선일보>와 <조광>지 등에 13년 동안 연재됐지만 결국 끝을 보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다가 1985년 사계절출판사에서 이 소설을 간행함으로써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을 우두머리로 하여 황해도 일대에서 실제로 활약했던 화적패의 활동을 다룬 작품인데, 가장 천한 백정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에서 벽초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라는 진보적 역사관을 짐작할 수 있다. ‘민족어의 보고’ ‘살아 있는 최고의 우리말사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미완의 소설 ‘임꺽정’은 홍석중 선생이 뒷부분을 마무리 지었다고 하는데 내가 제일 존경하는 지금은 교장직을 그만두고 영주에서 조용하게 스토리를 만들고 계시는 장성구 교장선생님이 최고로 추천하는 도서이기도 하다.

 

 

암튼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괴산군에는 홍명희에 대한 이름이 많지 않고, 대신 홍명희의 분신과 같은 임꺽정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괴산에는 홍명희 보다는 임꺽정에 대한 이름과 역사적 스토리가 더 많이 있다.

 

 

임꺽정이 다닌 ‘산막이 옛길’은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연결됐던 옛길 약 3.5km를 복원한 산책로다. ‘산막이’란 산으로 모두 막혀 있다는 뜻이다. 왼쪽으로는 물, 오른쪽은 산인 ‘산막이 옛길’, 길의 대부분이 괴산댐을 중심으로 나무데크가 설치돼 있고 적당하게 걷기에 좋다.

 

 

산책로에는 새롭게 만든 각종 스토리를 넣어서 심심하지 않게 해 놓았고, 초입 고인돌 쉼터와 연리지를 지나 소나무출렁다리도 재미가 있다. 그 옆에 ‘19금 정사목’도 재미있다. 소나무 세 그루가 매우 에로틱한 자세로 엉켜 있는 것을 사랑의 길로 이름을 붙여 놓았다.

 

 

길 곳곳에 이름을 부여했고, 얼음 바람골과 호수전망대, 정자도 있다. 중간쯤에는 약수터가 있고,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앉은뱅이가 이 약수를 먹고 그냥 걸어갔다고 하니 약수가 인기가 많다. 내가 마셔보니 그냥 물이었지만 스토리가 있으니 물맛이 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산책로 시작과 끝에는 배가 운행되고 있어서 갈 때 또는 올 때에 배를 이용하여 경관을 보는 것도 좋다. 조금 힘이 든다는 곳에는 어김 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배를 타는 유람선 승선장 근처에는 먹거리도 체험을 해 가면서 맛을 볼 수 있는 것이 아주 특징적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산막이 옛길’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등산코스도 함께 만들어 놓았다. 산은 등잔봉까지 500m 정도의 높이로 적당하고, 그 길을 따라 한반도 전망대가 있고, 천장봉, 삼성봉까지 3개의 봉우리가 있어 괴산댐의 전경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산 정상에서 걷는 등산로는 소나무와 괴산댐의 물이 함께 만들어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는 느낌보다는 청량감을 느끼듯이 시원한 냉수를 마시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렇게 시원하다.

 

 

여행일 : 2013년 6월 9일(일)

산악회 : 행복가족김천산악회

에디터 : (주)뉴스코리아네트워크 대표 김윤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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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6-16 10: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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