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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 전하는 신비한 옛 이야기들(15) - 이영주 기자, 구비전승 21번째 ‘정조 능지기’
  • 기사등록 2013-07-16 11: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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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능참봉은 조선시대 각 능(陵)의 일을 맡아보던 이른바 ‘능지기’이다. 품계는 종9품이었으며 주로 왕의 무덤인 능을 지키고 보살폈다.

 

오산은 화성·오산·수원에 이르는 문화·경제 교류를 하고 있다.

 

그 가운데 화성시 태안면 안녕동 장조(莊祖 1735~1762. 영조의 차남이며 정조의 생부)와 헌경왕후(獻敬皇后 1735~1812)의 합장릉 융릉 능지기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 조선 21대 왕 영조(英祖 1694~1776)의 차남 장조(사도세자)와 헌경왕후의 묘.

 

■ 능지기와 정조 임금 전설

 

조선 정조 때 화산릉 (현 융릉)지기가 살았다.

 

하루는 독산성 보적사 스님이 지나다 이 능지기를 보고 “당신은 내일 죽을상이요”했다.

 

능지기는 하도 기가 막혀 스님을 붙잡고 늘어지며 “내가 죽을 줄을 아니 분명 살아날 방도도 알 것이니 제발 알려주시오”라고 사정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스님이 “그러면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능 앞에 엎드려만 있어야 하네”라고 이르고 유유히 걸어갔다.

 

다음날 능지기는 새벽에 일어나 하루종일 능 앞에 엎드려 있었다.

 

효심이 지극한 정조대왕은 생부의 묘인 화산을 자주 찾았다.

 

그날도 화산에 나섰다가 비를 만나 수원 행궁에 유하게 됐으나 비가 오니 아버지의 묘가 걱정됐다.

 

임금은 신하를 불러 “당장 능에 가보아라. 만약 능지기가 집에 있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와야 하느니라”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신하는 능지기의 집에 들러 보니 능지기가 보이지 않는지라 능으로 가보게 됐다.

 

능지기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능 앞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신하는 돌아와 임금에게 그 정황을 상세히 아뢰니 정조 임금은 크게 기뻐하며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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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7-16 11: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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