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뜻을 이루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 기사등록 2015-04-29 13:16:25
기사수정

【오산인터넷뉴스】김지헌 기자 = 1932429, 25살 청년 윤봉길은 어느 때 보다 비장하게 마지막을 준비했다.

 

▲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하면 '도시락 폭탄'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윤 의사가 의거 때 던진 폭탄은 수통형 폭탄, 보온물병이었다. 의거 전, 윤 의사가 준비한 위장 폭탄은 수통형 폭탄과 도시락 폭탄 2개였다.

 

그 중 일제를 향해 던진 것은 바로 수통형 폭탄이었다고 한다. 체포 당시 가지고 있던 도시락 폭탄의 용도는 앞서 던진 수통형 폭탄의 불발을 대비한 것이고 또 다른 이야기로는 '자결'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이 부분은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다.)

 

 

폭탄의 불발로 인해 윤 의사는 그 자리에 잡혀 일제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한다. 윤 의사는 폭탄 투척을 시인했고 직업, 나이 등 신상명세에 관한 것을 제외하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문이 얼마나 심했는지 이미 그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 25살의 청년은 살아서 다시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같은 해 1219일 아침 6, 윤 의사는 총살로 짧은 25살의 생을 마감한다. 일제는 신문에 발표한 것과는 다르게 그의 유해를 화장하지 않았다. 육군 묘지 아래에 일반인이 왕래하는 통로에 암매장했다.

 

그로부터 13년 후, 윤 의사 유해는 발굴되기 전까지, 오고가는 행인들에게 밟히고 또 밟혔다. 죽어서까지 일제에게 능욕을 당한 셈이다.

 

▲ 유서, '강보에 싸인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로 시작한다.
 

1932428, 의거 하루 전, 김구 선생은 뒷날을 위해 윤 의사에게 이력서와 유서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윤 의사는 아직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을 유족이라 칭하며 남겨진 어린 두 아들들과 김구 선생에게 유서를 썼다.

 

앞서 36일에는 집을 나오면서 아내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7글자를 남긴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사내가 집을 나서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순간, 아내 배씨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83년 전, 오늘은 조선의 한 젊은이가 자신의 목숨을 버려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숭고한 날이다. 잠시나마 묵념으로 그의 희생과 일제강점기를 겪어야 했던 모든 이들의 아픔을 통감해본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5-04-29 13:16:25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최근 많이 본 기사더보기
뉴스제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