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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시장 이야기(3) - 장시의 기능 - 5일장은 중매처요 정보공유처였다
  • 기사등록 2015-07-25 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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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기획취재팀 = 우리는 흔히 장시(場市)를 물건을 사고파는 곳으로 알고 있다. 물론 장의 기능은 자신의 생활을 위해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과,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손님들이 가장 중요한 구성조건이다. 하지만 장의 기능이 매물과 매수로만 그치는 것일까?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장시는 더 많은 기능을 갖고 있었다.

 

▲  오산장(2005, 2, 3)

 

장이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하기에 장에서는 주변의 모든 이야기를 접할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장을 나가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다. 장에서는 누구나 고개만 숙여도 이웃이 된다. 상인과 손님을 떠나 흥정을 하면서 사로 속내를 털어 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장이란 곳이다.

 

▲ 오산장(2005, 2, 3)
 

중매처가 되는 장시

 

예전 글에서 보면 장에서 서로 만난 사돈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서로 소를 바꾸어 타는 바람에 사돈네 집으로 갔다는 이야기 등 이와 흡사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모든 매체가 장이라는 곳이다. 장은 많은 사람들이 만나게 된다. 장에서는 안면부지의 사람들도 한 자리에 앉았다가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된다. 장이 갖고 있는 특성 중 하나이다.

 

하기에 장은 중매처가 된다. 과거 사람들은 장에서 서로 만났다. 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함께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러다가 서로 동네이야기며 과년한 자식들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정보교류지이기도 한 장에서는 인물의 소개가 이루어지게 되고, 장에서 서로 만나 중매를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장시의 한 일면이다.

 

▲ 오산장(2005, 2, 3)
 

5일장의 장시는 정보창구

 

사람들은 5일장에서 세상 돌아가는 모든 소식을 알게 된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TV 등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할 수가 없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SNS는 당연히 부재했다. 유일하게 많은 장보를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5일장이다. 5일마다 한 번씩 서는 장을 찾아가면 그곳에 세상 돌아가는 모든 정보가 있고, 그것을 공유하게 된다.

 

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또한 5일장을 돌아다니는 상인들은 이곳의 소식을 저곳으로, 저곳을 소식을 이곳으로 옮기게 된다. 그들이 바로 정보 매개체였으며, 장에 나가야 그 모든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기에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5일장이다. 장시란 물건만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지혜를 얻는 곳이기도 했다.

 

▲ 오산장(2005, 2, 3)
 

5일장에서 사람들은 나라를 구했다.

 

독립운동가 유관순(1902~1920)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꽃다운 나이에 옥중에서 순국한 유관순의 나라사랑 장소도 바로 5일장이었다. 유관순이 독립운동을 한 것도 결국 5일장이라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관순은 18세 때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이었다.

 

유관순은 3.1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동지들을 규합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나이 먹은 여인처럼 위장을 하고, 병천, 목천, 천안. 안성, 진천, 청주 등을 돌아다니면서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와 유림 등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규합된 사람들을 음력 31일인 191941일 아우내(병천) 장날을 이용하여 총 궐기하여 만세운동을 강행할 것을 다짐했다. 거사일인 음력 31일 하루 전날 매봉산에 올라 횃불을 높이 들었다. 이 횃불이 아우내 장날 거사의 신호였다. 그믐날 밤 매봉산을 중심으로 우각산, 강단산, 돌산, 세성산, 아우내 장터 뒤 갓모봉, 봉화대, 계목산 등 일곱 곳에서 횃불이 올랐다.

 

191941일 이른 아침부터 아우내 장에 모인 사람은 3천명이 넘었다. 유관순은 직접 만든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함께 자주독립을 위한 만세를 불렀다. 아우내 5일장을 이용한 거사. 만일 5일장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장이기에 그 많은 인원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었던 것이다.

 

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기에 장만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좋은 곳이 없다. 더구나 5일장은 과거 장돌뱅이들이 모이던 곳이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얻는 매개체였다. 5일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그 장에서 나라의 구국운동도 함께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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