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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 열풍이 도가니탕처럼 뜨겁다. 조조할인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2005년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 실화를 다룬 알려진 스토리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진실에 가슴이 먹먹하다. 힘 있는 가해자와 힘없는 피해자의 구도는 우리 사회의 단편일 뿐인 데도 공감의 울림은 생각 보다 크다. 주인공 인호 역을 맡은 공유의 절제된 연기도 돋보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졌는데도 한 아주머니는 은막을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을 훔친다.

 

‘도가니’는 흥행돌풍만큼이나 후유증도 만만찮다. 무거운 주제의식과는 달리 어린이 성폭력 장면을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해 아역 배우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장에게 손이 묶인 채 성폭행을 당하는 청각장애 여자 어린이, 교사로부터 발길질과 주먹세례를 받는 남자어린이를 연기한 아역 배우들은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1학년이다. 제작사측은 “아역 배우들은 부모의 입회 아래 영화를 찍었고,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당시 상황이 어떤 장면인지 모르도록 하는 등 신경을 썼다”고 밝혔지만, 완성된 영화를 본 뒤 아역 배우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주연 배우 공유는 언론시사회에서 “아역 배우가 구타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영화가 시작된 지 30분 만에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갔던 것 같다”고 털어 놓았을 정도로 충격파는 크다.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 이유도 폭력과 선정성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대한 폭력과 선정적인 묘사가 지나치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원빈 주연의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마약을 운반하게 하고 아이들의 장기를 적출하는 설정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아역 배우들이 이런 자극에 노출되면 정서적 장애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 켈리포니아주는 아역 배우는 6시간 이상 촬영하지 못하고, 뉴욕주는 위험한 장면이나 외설, 부도덕한 장면의 출연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흥행보다 아역 배우 보호에 신경 쓰는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도가니’를 계기로 흥분과 분노로 들끓는 냄비근성도 여전히 드러났다. 정치권은 ‘도가니 방지법(法)’을 만드느라 법석을 떨고, 정부는 사회복지시설에 ‘공익 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뒤늦게 팔을 걷어 부친다. 경찰청도 장애인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해 여성 경관으로 구성된 성폭력 전담팀을 편성하겠다고 뒷북을 친다. 영화의 배경이 됐던 인화학교 폐교와 운영 법인의 설립 허가 취소 절차를 밟는 것도 여론의 뭇매에 등 떠밀린 사후약방문격의 조치다.

 

장애인학교에서 일어난 참담한 사건은 한 교직원의 신고로 세상에 알려졌고, 시민단체가 법원의 판결이 있기까지 3년 동안 지난한 투쟁을 벌였다. 사건이 발생한지 6년이 지나 영화 한편의 힘으로 국민의 공분이 일자 뜨거운 냄비처럼 쏟아내는 뒷북 대책들이 참 씁쓸하다. ‘도가니’ 후폭풍이 잠잠해지면 들끓던 냄비비근성은 도가니탕처럼 싸늘하게 식어질 것은 뻔하다. 우리사회는 늘 그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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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10-19 17: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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