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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 전하는 신비한 옛 이야기들(22) - 이영주 기자,구비전승 29번째 ‘외삼미 입향조’
  • 기사등록 2013-09-13 11: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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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오산 외삼미동에 터를 잡은 한 어르신의 부친은 역적으로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입향조(入鄕祖 어떤 마을에 맨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사람 또는 그 조상. 맥락상 구술자)는 유모의 도움으로 피신해 살았다.

 

이 이야기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고, 다만 후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유모의 현명함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오산시 외삼미동 삼미분교 부근 모습.

 

■ 윤 씨들이 외삼미동에 터를 잡게 된 이야기

 

외삼미 윤 씨의 입향조는 ‘응상’이다.

 

응상공이 벼슬길에 나서 사헌부 감찰이 됐다.

 

사헌부 감찰은 전국 지방을 순회하며 관리들의 잘못을 탄핵하고 시정하는 일을 했다.

 

당시는 감찰을 독립기관으로 인정해 암행어사에게 부하를 배속하듯 그 감찰 밑에 20명의 관원을 배속했다.

 

“응상공이 지방을 돌다 여기(외삼미) 와서 쉬는데 잠결에 신령이 나타나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 네 후손은 영원하리라’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렇게 잠에서 깨서 생각하니 여기가 집안의 한을 풀 수 있는 기회의 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응상공은 당신이 공부했던 여러 가지 지식으로 주변 터를 살펴보고 과연 명당이 되겠다고 판단해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제보자는 계속해서 소회를 풀어냈다.

 

“물론 그 꿈이 사실인지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우리 선대에서 내려오는 전설이니 그것이 여태까지 우리한테 내려오고 있으니 틀림없는 것이고, 여기 앉아 있는 이 터에다가 집을 짓고 사신 거야.

 

그 양반이 돌아가시니까 또 여기다가 산소를 썼고, 산소를 쓰고 그 아드님이 지금 사는 집으로 ‘방곡(坊曲: 이<里> 단위의 마을)’ 거기로 이사를 간 거야.

 

아늑하지 좋아요. 터가 둘러치고 있는데 뒤가 높지 않아요. 넓은 벌판에서 복이 들어오게 돼 있단 말이야. 언덕이 있으면 바람이 넘어오게 돼 있잖아.

 

유모가 젖을 먹이는 형상으로 돼 있단 말이야. 그런 땅이야. 그런 명당이다. 이쪽으로는 줄기가 조금 높아서 여기까지 이어진 거야. 이것이 주산이야. 이것이 S자로 돌아 내려 간 거야.

 

여기 주산이면 돌아서 꼬부렸어. 조상의 기하고 완전히 연결이 된 거야. 18대 동안 망하지 않고 재산도 없앤 일이 없고 살아 내려오는 거야. 이 양반이 자리 잡고 터를 잡고 살면서 여기 땅을 자꾸 늘려 나갔지.

 

외삼미, 내삼미에만 땅을 산 거야. 산소도 이 근방에만 썼고, 농사짓는 땅이 멀면 힘드니까 땅을 머슴들한테 주는 거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싸게 주고 그 사람들이 되 팔면 다시 사주고 하면서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땅을 또 주는 거야.

 

그래서 농지를 개혁할 때 지주들의 땅을 뻇어서 소작농들 주고 그랬는데 우리 집안에는 그런 일이 한 건도 없었어요. 이미 다 줘서. 해방 후에도 잡음이 없이 넘어 갔어요.

 

지금 여기 추모비도 세워져 있지만 윤학영 씨가 그런 일을 한 거야. 마을 전기도 종중에서 놔줬어요. 외삼미동을 다 했고 내삼미동은 돈이 부족해 못 했어.”

 

오산 구비전승 책자는 ‘실제로 필자가 외삼미를 답사하면서 제보를 들으니 삼미의숙의 설립을 비롯해 윤 씨들이 현 오산시의 교육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석을 놓고 토대를 마련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 삼미의숙(三美義塾) : 오산시 외삼미동에 세거(世居)해 온 해평 윤 씨 종중이 1923년 4월4일 설립한 사립학교.

 

<제보자 : 윤의섭(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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