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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한국이 더 좋아요' 다문화 가족‥ 롼 찌엔화 씨
oshong 기자 2012-01-14 09: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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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한국에 온 지 7년. 중국 안후이성이 고향인 롼 찌엔화(39) 씨는 이젠 한국이 더 좋다. 착한 남편과 아들 그리고 시부모님과 함께 하는 그녀의 한국 생활을 들어 보자.

 ▲ 롼 찌엔화 씨


10년 전 중국 관둥성 추수 감사절 축제에서 그녀는 남편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녀는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고 회사 일로 그곳을 방문한 남편과 자연스레 한 자리에 있게 됐다. 축제의 일환으로 게임을 했다. 여자는 바깥쪽에서 바깥을 보고 돌고 남자는 안쪽에서 안을 보고 돌다 멈춘 뒤 돌아보며 인사를 하는 놀이였다. 그로써 남편을 처음 보게 됐다.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그녀가 남편을 내려다 보았을 때 '아, 사천성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천성 사람이 키가 작기로 유명하다고.


  ▲ 다문화가족 아이들 교육 모습

 

착하고 친절하며 영어·중국어를 포함해 한국어까지 3개 국어에 능통한 남편이 좋았다. 특히나 그의 진실된 마음이 좋아 1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됐다. 그 후 1년여를 중국에서 살다가 "잠시만 한국에서 살아보고 아니면 돌아오자"는 남편의 말을 믿고 한국으로 왔다. 그러나 한국 생활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다. 친구를 만나거나 직장 생활을 할 수도 없어 외로웠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염려할 정도였다. 어린 아들에게 예민하게 화를 냈던 것이 지금은 가슴 아프다고 회상한다.

  ▲ 교육 모습(오른쪽 빨간색 옷이 롼 찌엔화 씨)
 

그러다 다문화센터에서 이중언어 교육을 시작하게 됐다. 그녀와 같은 다문화 가족의 어린이에게 어머니의 나라말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녀는 열심히 준비했다. 아이들은 그녀의 가르침에 따라 말과 문화를 배워갔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 그녀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제는 다문화센터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강사가 됐다. 아이들은 집중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그녀의 수업준비는 더욱 철저하다. 재미있는 그림과 카드로 그들을 매료시킨다.


  ▲ 롼 찌엔화 씨가 직접 만든 카드를 들고 선 아이들
 

가끔 그곳에서 그녀와 같은 상황의 (그녀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의)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다. 그런 때면 그들의 지난 이야기와 그녀의 힘들었던 경험담을 나눈다. 그로써 서로의 위로가 되어준다. 그녀는 당차고 지혜롭다.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단아하고 단단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녀다. 그녀의 경험담이 어머니들에게 도움이 됐을 것이다. 아니면 얼마 간의 동질감으로 위안을 얻었으리라.

  ▲ 롼 찌엔화 씨가 직접 제작한 수업 준비물

 

교육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있다. 다문화지원센터에서 이뤄지는 교육이므로 교육생의 60%는 다문화가족이어야 하고 40%는 한국인을 받고 있다. 교육생의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다. 출출해할 아이들에게 간식이라도 주며 수업을 진행하고 싶은 게 그녀의 마음이다. 이런 부분에 더욱 지원을 바라는 부분이다.

 ▲ 교육 도구를 들고 선 아이들
 

언어는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아들도 중국에서 살 때는 중국말에 능통했다. 그러나 한국에 온 후 한국말을 배우고자 그녀조차 중국말을 쓰지 않아 이제는 아이도 중국말을 잘하지 못한다. 다시 아이에게 중국 글자와 말을 가르치려 하니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 대회 준비로 글자를 쓰게 하고 한 달 후 아들은 놀라보게 발전했다. 이제는 다섯 줄로 된 문장도 척척 써낸다. 8살 아이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성과다.

  ▲ 롼 찌엔화 씨와 아이들

 

연애 할 때 춥다고 하면 회사까지 작은 전기난로를 사와 감동을 안겨 주던 남편. 또 중국에서는 흔치 않았던 딸기를 주문하면 멀리 돌고 돌아 기어이 사와 먹이던 남편이 이제는 게을러졌다고 애정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작년 말 고장난 개수대 수리를 부탁했는데도 해를 넘기도록 하지 않았다. 결국 그것은 고스란히 시아버지 몫이 됐다. 남편이 하지 않는 일을 시아버지가 해주니 매우 고맙고 든든하다. 또 아들과 시간을 보내 주어 그녀가 마음 편히 다문화센터 교육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밥을 해준다고 한다. 항상 함께 해주는 가족이 있어 그녀의 한국 생활은 편안하고 안락하다.


  ▲ 인터뷰 중인 롼 찌엔화 씨

그녀는 한족이다. 한족의 전통은 여성 상위다. 또 며느리가 시어머니보다 높다. 상대적으로 노인복지가 미약한 한족은 며느리가 없이는 노후를 보장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명령을 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시어머니가 밥을 하고 며느리는 마작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살던 그녀이기에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춥고 너무 따뜻한 중국 기후가 멀게 느껴진다고 한다. 한국이 더 살기 편하다.

 ▲ 수업 중인 아이들

 

그녀의 고향은 안후이성으로 농촌과 도시가 섞여 있는 곳이다. 집 앞에 호수가 있어 어렸을 적 고기를 잡고 민물 새우도 잡아 먹고 팔기도 했었다. 음식이 담긴 그물을 물 속에 집어넣고 가만히 집어들면 그 속에 어른 손가락만한 새우가 팔딱거리고 있었다. 여름이면 그 곳에서 수영도 즐기며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 그녀의 고향에서 유명한 곳은 황산이다. 10살 때 인근 시로 이사를 갔지만 고향에 대한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 롼 찌엔화 씨의 고향에 있는 황산 필가봉 (출처 : 네이버)

 

한국 노래를 좋아하고 한국 영화를 즐겨 보는 그녀다. 웬만한 순정 한국인도 소화하기 힘들다는 청국장을 사랑하는 그녀다. 된장도 물론 맛있다. 또 중국의 건물은 밖에서 보기에는 좋지만 막상 들어가보면 별로인 경우가 많은데 비해 한국은 반대다. 들어가기 전에는 진가를 내비추지 않는 한국의 매력에 그녀는 이미 흠뻑 빠졌다.

  ▲ 롼 찌엔화 씨에게 어머니의 나라 언어를 배우는 다문화 가족 아이들

 

아이를 가졌을 때 남편은 손수 과일을 씻어 깎아 담아 포크로 집어 주었다. 그녀는 뱃 속의 아이에게 중국어로 된 동화책을 매일 읽어줬다. 그런 아들이 지금은 엄마가 힘들 때면 먼저 다가와 안마를 해준다. 듬직한 아들이다.

 

 ▲ 교육 중인 아이들


다가오는 설. 가족을 만나러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많다. 길 가다 혹여 중국 억양을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친근한 눈빛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 그들도 롼 찌엔화 씨처럼 이미 한국에 적을 두고 한국을 마음에 품을 사람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롼 찌엔화 씨의 활동들>